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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직접 핸드드립하는 이색 무인 카페, 라깡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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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시장 담벼락, 김광석을 품다를 통해 소개해드린 대구 방천시장에는 이색 카페가 시장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지난 번 방천시장에 들렸을 때, 시장 곳곳에 숨겨진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구경하며 걷다 우연히 카페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카페 이름은 '라깡띤'.

시장 한가운데 있어 시장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쉽게 찾을 법도 한데, 시장을 구경하다보면 의외로 그냥 지나치기 쉽기도 합니다. 저 또한 카페를 발견하고서는 돌아가는 길에 들려야겠다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지나치다 뒤돌아 다시 찾아 들어갔었습니다. 섞이지 않을 것이라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어쩌면 카페가 시장과 잘 어우러진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카페에는 젊은 남자 두분과 아주머니 한분이 카페 가운데 놓인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었습니다. 외관은 그래도 카페 분위기가 났었는데, 안은 일반 카페와는 달리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 게다가 테이블이라고는 안쪽에 커다란 나무 테이블 하나 뿐이었습니다. 테이블도 어느 작업실에 쓰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는지, 여기저기 물감이 그대로 묻어있었습니다.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는데, 카페에 있는 어느 누구도 손님을 맞으려하지 않는 겁니다. 이상하다싶어 주위를 살펴보는데, 카페 벽면에 있는 칠판에 쓰여진 내용을 보고서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라깡띤을 즐기는 방법>

1. 커피마시기
① 원두 1국자를 분쇄기에 넣고...


친절(?)하게 손님이 직접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방법이 적혀있던 것입니다. 요즘은 직접 드립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커피라고는 쓴맛나는 물이라고 밖에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크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왕 들어온 것, 그냥 나갈 수는 없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주인이 커피를 만들어 주겠지란 생각에 들으라고 '손님이 직접 드립해야하는가 보네'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랬더니 남자 한분이 원래는 그러는 건데, 친절하게도 원하면 드립을 해준다고 하시는 겁니다. 당연히 부탁드린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속으로는 정말 다행이다 싶더군요.

모자란 원두를 볶고, 커피를 만드는 동안 깊은 산속 한가운데 외딴 산장같은 묘한 분위기의 카페를 다시금 두리번 거렸습니다. 벽에는 빼곡히 책과 그림 도구들, 그리고 그림들이 자리하고 있고, 한쪽 구석에는 이런저런 악기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물감이 묻어있는 테이블도 그렇고, 무언가 이상한 카페라는 생각과 색다름에 호기심이 발동을 했지만, 점잖을 빼며 시장을 돌아다니다 받아 온 방천시장 신문에 눈을 돌렸습니다.


한참 분주히 움직이던 남자 분이 드디어 커피를 건네주며, 커피에대해 무어라 말씀해주셨는데, 모르는 용어라 기억이 나질 않네요. 쓴맛을 느끼며 이색적인 분위기의 카페에대해 물어보려 남자분께 첫말로 '주인장 되세요?'라고 말을 건넸는데, 돌아오는 답변에 또다시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은 단골손님이라는...


지금까지 주인이 아닌 카페 단골손님이 다른 손님에게 커피를 만들어 주었던 겁니다. 주인은 뭘하고 단골손님이 다른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인지, 놀랍고 황당하고 더욱 호기심만 커졌습니다. 커피를 몇 모금 마시고 나니 아주머니도, 그리고 단골손님이라던 남자 두분도 모두 나가시려는 겁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인사를 나눈 후 드디어 텅빈 카페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반에는 갓볶은 원두와 각종 커피 드립 도구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누가 몰래 들어와서 가져가면 어쩌나, 마신 후 돈도 안내고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들더군요. 그러고보니 계산은 어찌하나 싶었는데, 선반 한켠에 놓여진 작은 칠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여진 자그마한 바구니, 바구니 안에 놓여진 만원짜리 몇장과 동전들...


커피 만들기부터 계산까지 모든 게 셀프였던 것입니다. 주인없는 카페, 손님이 직접 핸드드립해서 커피를 만들어 마셔야하는 카페에서 계산까지 셀프인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묘한 기분을 간직한 채 라깡띤을 나섰습니다. 호기심이 가시질 않아 돌아와 검색을 해보니 그곳은 '예술가들의 구내식당'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진 화가 이동원씨의 작업실 겸 카페라고 나오더군요. 방천시장 곳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같은 예술 작업실이면서도 시장 예술가들과 지나는 손님에게 커피 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카페이기도 한 '작업실카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카페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작품들도 모두 화가가 직접 그린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검색한 내용으로는 '작업실카페'이기에 원래는 화가의 작업실인터라 주인장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나옵니다만 제가 찾아간 날만 그랬던건지, 아니면 이제는 완전히 무인 카페로 변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직접 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계산도 해야하니 주인이 있어도 (일반적인 의미의) 무인 카페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술가들의 구내식당, '라깡띤(La Cantine des Artistes)'

커피라고는 쓴맛나는 물이라고 밖에 느끼지 못하는 제게 쓴맛외에 무언가 다른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이색 카페였습니다. 방천시장에 들리실 일이 있다면, 라깡띤의 색다른 커피 맛을 한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단, 핸드드립을 못하신다면 난감하실 수도 있다는 걸, 마침 단골손님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