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마음이 아파 쉬고 있을 뿐 당신과 똑같은 사람"
유난히 쌀쌀하던 가을 아침
이길형 씨(32)와 처음 만났을 때, 이 분이 바로 우리가 찾아 온 자립한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놀랐다. 약간 쑥스러워하면서도 친근하게 웃는 말쑥한 생김새가 머릿속에 있던 '
정신장애인'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말투도 차분하고 대화에도 막힘이 없었다.
환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길형씨
그의 직업이 사회적 일자리인 '
컬러풀잉크 행복충전 1호점'에서도 홍보 및 전화 업무, 말하자면 '영업직'이라는 점도 색달랐다. 정신장애인은 비사회적일 것이라는 편견과는 정반대였다. "먼저 말 거는 것은 아직 서툴지만 남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는 이 씨는 일이 자기한테 정말 잘 맞는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가게마다 돌며 인사하고 전단지를 돌리며 홍보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저 평범하게 했을 뿐인데, 옆에 있던 팀장님이 오히려 놀라시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말을 잘 하냐고." 물론 전화로 가격 흥정을 할 때 같은 돌발 상황에는 당황해서 대처하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에 하던 생산직 일에 비하면 적성에도 잘 맞고, 사회복지사가 상주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을 상담할 수 있어 힘든 점이 거의 없다고.
그는 이렇게 무사히 정착하기 전까지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이 씨에게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난 건 고등학교 때. 친구와 다툼이 있은 뒤 분한 마음에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몸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조울증, 정신분열 등 수많은 정신병을 돌아가며 겪었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퇴원한 뒤에도 정신 병력이 있는 그에게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병역면제'라고 적으면 사유를 꼭 물어봅니다. 정신병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절대 취업할 수 없어요." 결국 군복무를 대신해 고등학교 때 실습했던 업체에서 사회봉사를 했다고 속이고 취업해야 했다. 이렇게 늘 상황이 불안해서 치료받는 것도 게을리 했고, 그러다 보면 상태가 악화돼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에 다니는 일의 반복이었다. 악순환이 끝난 것은 서구정신보건센터와 클럽하우스 비콘 같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안 뒤부터였다.
"
서구정신보건센터에서 '진정감'이란 걸 처음 느껴 봤습니다. 가을에 증상이 심해져 한동안 집에만 있고 센터에 나가지 않았던 적이 있는데 원장님이 직접 찾아오셨어요.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냐고 말씀해 주셨지요. 그 전까지 저는 제 주위에 그렇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혼자 방에 있을 때는 외롭기만 했는데, 그렇게 마음을 열면서부터 힘들 때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털어놓게 됐고, 상담도 받을 수 있게 됐다. 친구도 사귀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집에 있는 것이 그 자신에게 좋지 않다는 걸 깨닫고 정신장애인 입소 시설인
비콘을 찾았다. 성격상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지내는 편이 오히려 항상 조심할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비콘에 있는 동안 마찬가지로 정신장애를 치유하고 있던 여성과 교제해 퇴소할 때는 함께 방을 구해 나가게 됐다.
"나갈 때 최대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둘이서 잘 살아 보자고 다짐했어요." 곧 두 사람 다 취직해, 월급과 기초생활수급비를 합치니 따로 지원이나 부모님의 원조조차 필요 없게 됐다. 떳떳한 '자립'인 셈이다. "그 전에도 혼자 살겠다고 뛰쳐나왔던 적이 있었지만 힘들었어요. 이제는 지켜봐 주는 눈이 있다는 걸 아니까 마음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양가를 오가며 현재 교제하고 있는 여성과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 씨는, 현재 자립을 준비하고 있는 정신장애인들도 되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독립해 외롭거나 힘들지 않게 서로 격려해 줄 것을 권했다. 이 씨는 독립한 뒤 일을 하는 한편으로 치료를 병행하며 노력한 결과, 병도 많이 호전됐다.
"길을 갈 때 가끔 더러운 옷을 입고 머리도 길게 기른 사람들을 보잖아요. '정신장애'라고 하면 전부 그런 사람들이라고 떠올리는 것 같아요." 이 씨는 그런 시선에 특별히 상처를 입는 건 아니지만 못마땅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건 증세가 좀 심한 사례일 뿐,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약을 꾸준히 먹기만 하면 정상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일할 수 있고, 생활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몰라서 무조건 이상하고 위험하다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을 찍기보다, 잠시 마음이 아파 쉬고 있지만 나와 다를 것 없는 한 인간으로 생각해 줬으면" 하는 게 이 씨의 바람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항상 자기처럼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보면 다가가 뭐든 도와주고 싶다는 이 씨. 오늘은 오랜만에 부모님을 찾아뵐 거라며 미소 띠는 그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고 하면 이 또한 '편견'일까. 자립의 첫 발을 내딛은 이길형 씨의 앞길이 앞으로도 쭉 즐겁고 힘차기를 기대해 본다.
-국가인권위윈회 대구지역사무소 인권기자단 장애인권팀
위 글은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지역사무소 인권기자단 장애인권팀으로 활동하며 취재에 참여한 글임을 밝힙니다. 참고로, 대구 경북 지역의 다양한 인권관련소식과 인권기자단의 기사는 인권위 대구지역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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