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기수, 한때는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질 정도로 여성에게는 문턱이 높은 분야였습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를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편견은 한동안 기정사실화되어왔기 때문입니다. 그에따라 1975년 한국 최초의 여성기수라 할 수 있는 이옥례씨 이후 여성기수는 좀 처럼 보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벽'은 시간이 지마면 허물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경마기수' 또한 점차 여성들의 도전이 계속되어 오면서 지금은 여성기수들이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슈퍼땅공' 김혜선 기수를 비롯해 나유나, 이아나 등 10여명의 기수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여성콤비' 이신영 조교사와 김혜선 기수가 한조를 이뤄 우승행진을 이어가며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합니다.


이신영 조교사는 여성기수로서는 선구자적인 인물로 1999년 '기수후보생 학교'에 입교한 다섯명의 여성 중 한명입니다. 실질적인 한국 최초의 여성기수로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본격적인 여성기수 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어 한국 최초의 여성 조교사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데뷔 1개월만에 첫승을 거두며 또 한번 보란듯이 금녀의 벽을 허물어버린 것입니다.


150cm의 작은 키지만 남다른 승부근성으로 '슈퍼땅콩'이라 불리는 김혜선 기수는 현역 여성기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9년 데뷔해 올해 3년차인 김혜선 기수는 현재 랭킹 12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여성기수 중에서는 단연 눈에 띄는 성적을, 그리고 남성기수들을 포함해서도 주목할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기도 합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타이틀을 이어가는 이신영 조교사와 현역 여성기수를 대표하는 김혜선 기수의 '여성콤비'는 이제는 더 이상 '금녀'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마에서 남녀의 차이는 극복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경마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여성 조교사와 여성 기수들의 도전과 활약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합니다.

덧) 이 글은 KRA 인터넷 명예기자로 활동하며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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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사진을 보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흐드러지게 핀 장미와 푸른 잎이 무성한 가로수를 보며 편안함을 느끼 실 수도, 정오의 따사로운 햇살을 보며 나른함을 느끼 실 수도, 참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지 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혹시 쭉 벋은 길가, 흐드러지게 핀 장미 넝쿨 넘어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시진 않으신가요?

사진을 좀 더 큰 것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석가탄신일 전에 찍은 사진이라 오늘쪽 가로수를 따라 연등이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왼편 장미 넝쿨을 자세히 보면 얼핏 철망이 보이는 군요.

철망이 보이는 걸 보니 장미 넝쿨 넘어엔 다른이들의 출입을 막아 보호하기 위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럼, 이 사진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콘크리트 담장위에 가시철망까지 있어 두려움과 살벌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장미 가로수길 사진과 콘크리트 담장을 함께 보여주는 이유가 궁금하실 겁니다.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두 사진은 사실은 같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길을 찍은 사진입니다.

모두 교도소 담장 길이죠.

장미 가로수 길은 자동차 도로가 있는 쪽이고, 아래 콘크리트 담장 길은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샛길이죠.

아래 사진을 보시면, 좀 더 확연히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벽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하죠.

자신을 보호하고 감추기 위해 스스로를 둘러싸는 벽과 다른 이들을 격리하기 위해 그들을 둘러싸는 벽.

교도소를 둘러싸고 있는 벽은 후자가 될 것입니다. 개개인 스스로를 모두 둘러쌀 수는 없으니 그들을 한 곳에 몰아 가시 철망을 덧씌운 담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 사진 오른 편에 대자대비로 대표되는 석가의 탄신일을 축하하기위한 연등과 가시철망으로 덧씌운 담장이 조금 안어울리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저 곳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데다, 자주 가시철망 담장길을 따라 오가곤 합니다.

처음 이 곳으로 이사를 와서 교도소 담장아래를 지날 때면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무덤덤해져 그저 평범한 담장 길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교도소 정문 앞을 지키고 있는 위병을 볼 때면 교도소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지만 말이죠.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교도소의 필요성에 대한 건 아닙니다. 단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담장 안에 가둘 수 밖에 없었던 만큼,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 껏 글을 쓰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일상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가져보셨으면 하는 바램 뿐 입니다.

저 또한 교도소 담장 아래를 아무생각없이 지나 칠 정도로 너무 안일한 마음으로 지내왔던게 아닌가 싶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민주'와 '자유'로 상징되는 6월이라 이런 생각이 든건지도 모르겠네요.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Canon IXUS 65, 2007/05/18)

덧) 이같이 일반인들의 생활 반경 속에 있는 교도소가 이 곳 말고 어떤 곳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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