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가장 기초라 불리는 ‘집터’를 탐구하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에 자리 잡은 집 ‘진주댁’부터 좋은 집터를 만드는 비법까지. 멸문지화를 당한 사육신 중 유일하게 대를 이어온 순천 박씨 집성촌 묘골마을. 각자의 방법으로 오랜 고택을 변신 시키는 사람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진다”
매화 꽃잎처럼 6개의 산에 둘러싸인 모양이라 하여 매원(梅院)이라 불린 마을. 매원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영남 3대 반촌으로 꼽히는 곳이다. 과거 ‘천석꾼’이 일곱, ‘만석꾼’이 ‘셋’이나 있던 마을이 현재는 서울대를 70명이나 보내 일명, 연고대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마을이 되었다는데. 이토록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잘될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수욱-황태숙 부부가 부의 기운이 가득한 마을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건축탐구 집을 맞이했다. 그들은 이 마을에 한옥을 세 채나 소유하고 있는 부부다. 안산(풍수지리상 주가 되는 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조건을 갖춘 ‘진주댁’,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의 야전 병원으로도 사용되었던 명품 고택 ‘지경당’, 그리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한옥 ‘계실댁’까지. 부부는 자신의 집을 통해 억대에 달하는 비밀의(?) 나무부터 궁궐에서만 사용되었던 지붕의 대문, 좋은 집터를 만들 수 있는 노하우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김호민 소장도 좋은 한옥이라 말하며 감탄했던 마을의 고택들. 이수욱 씨는 이 가치를 진작부터 알아채고 마을의 100년 넘은 고택들을 추려내 국가 등록 문화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는데. 마을 사람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자녀들 또한 이런 이수욱 씨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지경당’과 ‘진주댁’을 포함해 많은 고택을 품은 매원은 전국 최초 마을 단위 국가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집을 넘어 마을까지, 더 풍성한 이야기를 담은 건축탐구 집. 교수 등 마을 출신 인재들을 나열하려면 하루(?)는 꼬박 걸린다는 매원마을의 비밀을 탐구해 보자.
대구시 달성군에는 ‘묘한 느낌이 가득하다.’하여 ‘묘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있다. 묘골마을은 긴 산등성을 따라 2km 들어가야 비로소 마을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해당 마을은 조선 세조 2년(1456)에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멸문지화를 당한 여섯 명의 충신, ‘사육신’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팽년의 후손’들이 뿌리를 내려 560년간 유지해온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일가가 멸족될 당시 박팽년의 둘째 며느리가 자신의 아들을 노비의 딸과 바꿔 혈통을 보존해 왔다고.
박돈규 씨는 8대조 어른의 아호를 따서 만든 집, ‘운경정사’의 주인이자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 고향과 가문을 지키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돌아온 운경정사는 유일하게 남았던 ‘중사랑채’마저 훼손된 상태. 박돈규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에 하나, 둘씩 빈집들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 그 때문에 박돈규 씨는 순천 박씨라는 동성을 고수하지 않고, 집에 생명을 불어넣을 타성의 사람들을 찾아 마을의 한옥을 임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통 지연을 만드는 ‘한옥 애호가’ 황의습 씨와 국문학을 연구해 온 교수였던 이상규, 이정옥 부부가 묘골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다양한 연으로 아담한 한옥을 다채롭게 꾸민 ‘람취헌’과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창립한 이병철 회장의 부인 박두을 여사의 생가터까지. 고택을 가꾸며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시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