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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을 채우는 향긋한 봄 바다! 주꾸미전골·게국지·눈머럭대볶음 | 한국인의 밥상

엔터로그/다큐멘터리

2024. 3. 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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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니어도 좋다. 바다는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봄철 진미로 봄소식을 전한다. 물오른 주꾸미가 어부의 어망을 채워주고, 어머니만 홀로 남은 외로운 섬, 추도의 갯벌에선 바지락, 쫄장게가 새싹처럼 불쑥 인사를 건넨다.

 

그뿐인가! 겨울이 물러난 태안의 김 양식장에선 쇠락해 가던 아버지의 바다를 꿈으로 바꾼 아들도 있다. 지나간 시절의 봄을 추억하며 오늘을 또다시 웃음꽃으로 채워가는 섬마을 사람들에게 봄 바다는 어떤 빛깔로, 어떤 맛으로 다가올까?

 

한국인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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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마을에 찾아온 봄 손님, 주꾸미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던 섬, 원산도. 지난 2019년 원산안면대교가 생긴 후, 이곳 원산도는 안면도에서 차로 10여 분이면 찾아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 되었다. 원산도 초입에 자리한 초전마을에는 요즘 섬을 들썩이게 하는 봄 손님이 찾아왔다는데. 바로, 이맘때면 알이 차서 더 맛있다는 봄 주꾸미!

 

주꾸미는 조개껍데기 속에 주로 서식하는 습성이 있어 소라껍데기를 이용해 조업을 한단다. 새벽에 출항한 어부, 양상식 씨의 배에도 봄 주꾸미가 한가득 잡혀 올라왔다. 기운차게 꿈틀대는 주꾸미를 가득 들고 향한 곳은 손맛으로 소문난 초전마을 부녀회원들이 기다리는 초전마을 사랑방이다.

 

옛날에 주꾸미는 원산도 어부들에게 그리 환영받는 손님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주꾸미가 잡혀도 바다에 다시 버리고 올 정도였다고. 이제는 봄 주꾸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섬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제철 맞은 주꾸미로 맛 좋은 한 상을 준비하기 위해 최순자 씨를 필두로 초전마을 부녀회원들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살짝 데쳐 주꾸미 본연의 맛을 살린다는 주꾸미숙회부터 매콤하게 볶아내 더 맛있다는 주꾸미볶음, 알이 꽉 찬 주꾸미가 통째로 들어간 주꾸미전골까지! 노곤한 춘곤증도 이기는 기운찬 주꾸미 밥상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반가운 봄의 전령사, 주꾸미와 함께 즐거운 봄날을 보내고 있다는 초전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김장수, 오늘도 김 따러 갑니다 –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바닷물이 빠져나간 태안의 갯벌, 바닷속에 숨어 있던 기둥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께까지 오는 기둥마다 널려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김! 오늘도 김장수 씨는 손수 김을 채취하기 위해 갯벌로 출근한다. 태안의 김은 바다 위에 김을 띄워 양식하는 ‘부유식’이 아닌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방식인 ‘지주식’ 양식 방법을 사용한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태안 갯벌의 특성을 이용해 바닷물이 들어오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광합성을 하는 김을 만들고 있단다. 예로부터 태안 지역은 집집마다 김을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는데. 장수 씨도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손으로 직접 김을 뜨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장수 씨가 아들에게 김 뜨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에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7년 전, 김 양식을 하겠다고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 게다가 당시 태안의 김은 명맥만 근근이 유지하고 있는 터라 장수 씨의 아버지, 어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전통적 김 양식법과 유기농법을 적용한 아들의 선택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은 다시 그 바다에서 새봄을 만났다. 덕분에 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시작했던 장수 씨의 아내, 미영 씨도 건강을 되찾았다.

 

김을 밥반찬, 혹은 김밥용 김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산! 텃밭에서 직접 캐온 달래와 장수 씨가 따온 김을 넣고 부치면 봄철 별미인 달래김전이 탄생한다. 또 쌀로 만든 피에 굴과 김을 싸서 튀기면 굴김말이가 된다고 하니, 장수 씨의 음식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이에 질세라 어머니 경자 씨는 집안 대대로 이어온 충청도식 삭힌 김치에 알이 차 더 맛있다는 봄 꽃게로 전통 방식의 게국지(게장으로 담근 김치)가 아닌, 시원하고 깊은 맛을 자랑하는 게국지를 끓여낸다. 내장이 양념으로 들어가 더 고소한 양념게장과 물김을 새콤하게 무친 김무침까지...

 

어머니와 아들 내외가 차려낸 따스한 봄 밥상이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다는 이름, ‘김장수’. 그 이름대로 진짜 김 장수가 된 장수 씨 가족들의 유쾌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만나본다. 

 

추도(抽島)를 지키는 등대, 어머니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섬의 모양이 송곳이나 못과 같이 뾰족하게 위로 솟아난 것처럼 보여 ‘빼섬’이라고도 불렸다는 섬, 추도. 영목항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을 가야만 닿을 수 있는 이곳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간다는 조현옥 씨. 섬에서 홀로 집을 지키는 어머니 때문이란다.

 

예나 지금이나 열 가구 내외가 살던 작은 섬. 그 옛날엔 봄이면 멸치, 실치잡이, 김 양식으로 제법 북적이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어업에 종사하는 집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쓸쓸한 섬이 됐다. 그래도 현옥 씨에게 어머니가 사시는 추도는 고향이자 늘 돌아가고 싶은 어머니의 품이다.

 

도시에서는 장을 보려면 마트에 가야 한다지만, 이곳 추도에서는 장을 보러 갯벌로 향한단다. 갯벌엔 풍성한 봄의 먹거리가 기다리고 있다는데. 바위 틈새에 몸을 숨긴 수많은 쫄장게(납작게), 봄에 먹어야 더 맛있다는 바지락, 뚜껑이 눈을 막고 있는 모양 때문에 눈이 멀었다고 하여 ‘눈머럭대’라고 불린다는 눈알고둥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여기에 현옥 씨의 동창 이근수 씨가 선물한 우럭까지 더하면 맛있는 한 상을 위한 준비가 끝이 난다. 특히 현옥 씨에게 ‘눈머럭대’는 아주 특별한 식재료다. 어부였던 아버진 술을 드신 날이면 꼭 해장국으로 눈머럭대를 끓여 드셨고, 입맛도 유전되는 것인지 현옥 씨는 쌉싸름한 그 맛에 반해 고향에 오면 자주 먹는 음식이 눈머럭대볶음이란다.

 

안면도에서 작은 섬 추도로 시집와 이곳에서 눈감고 귀 닫고 평생을 사신 어머니의 삶은 눈머럭대를 닮았다. 하필 멸치가 많이 잡히던 봄에 현옥 씨가 태어나는 바람에 어머니는 몸조리도 못 했고, 현옥 씨는 어머니 품을 맘껏 차지하지도 못했단다. 껍질 속으로 몸을 감춘 눈머럭대를 꺼내듯 모녀는 그동안 못했던 속내를 나누며, 사랑이 듬뿍 담긴 눈머럭대볶음을 만든다.

 

잔칫날이면 섬마을 사람들 상에 빠지지 않았다는 바지락우무묵무침과 우럭젓국, 추도 사람들의 만능 간장으로 만드는 쫄장게장까지... 이제는 등대처럼 추도를 홀로 지키고 계신 어머니와 현옥 씨가 그 시절의 애환과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추도 밥상을 차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