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과 마찬가지로
도시도 태어나고 성장하고, 그리고 끝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끝은 또 다른 탄생의 기약이긴 하지만 말이죠.
대구 소식을 찾아 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찾아간
블로그에서
신천동 지역이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을 그곳의 기록을 남기기위해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이미 철거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탓에 대부분의 건물을 헐리고, 아파트 몇 채와 아직 작업이 시작되지 않은 듯 보이는 텅빈 주택들 뿐이었습니다.
신천 철거지구
신천 철거지구 현장 동영상
철거지구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걷는데, 다른 곳은 다 철거되어 흔적만 찾아 볼 수 있는 장소에 주택 몇 채 만 덩그라니 남아있어 다가갔더니 행정 소송 중이니 철거하지 말라는 글이 벽면에 적혀 있더군요.
대신, 사람 하나 없이 텅빈 집들은 동네 놀이터가 되어버린 듯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도시의 일생을 한번에 보여주는 듯 철거를 앞 둔 주택들과 뒷 편의 아파트 단지의 묘한 대조가 이채롭습니다)
신천 철거지구를 한참동안 이리저리 둘러보며 걷는데, 좁은 골목 사이로 한 어른신께서 빗자루를 들고 골목 청소를 하고 계시길래 궁금한 마음에 다가가서 몇 가지를 여쭤봤습니다.
(노 부부가 살고 계신 골목)
그 어르신은 이 곳에 터를 잡고 산지가 50년이 넘었는데, 이 곳을 떠나려니 마음이 착잡하다고 하시더군요. 더욱이, 보상금이 너무 적게 책정되는 바람에 떠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할 수 없이 늙은 아내와 텅빈 동네를 지키고 살고 있는데,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시더군요.
혹시 아직 철거지구에 사는 분들이 계신가 물으니 건너 편 철거지구에 한 가구가 살고 있고, 교회도 아직 철거가 안되고 그대로라고 말씀하시며, 허리를 숙여 하시던 빗자루질을 계속 하셨습니다.
(철거지구에 남겨진 교회)
노 부부만 사는 골목일 뿐인데도 저리 열심히 청소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50년 넘게 살아 온 동네를 떠나야 하는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건강히 계시라는 인사를 남기도 돌아서는데, 뉘엇뉘엇 떨어지는 석양이 드리워진 스산한 골목에서 허리숙여 빗자루질을 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더욱 쓸쓸해 보였습니다.
철거지구의 무너져버린 건물처럼 그 옛날 누군가의 추억 또한 잊혀져버릴 것을 생각하니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건물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사람들이 살게 되면 그들의 추억이 잊혀진 추억들의 빈 자리를 메워나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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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비롯한 전국 각지의 도시에서는 이와 비슷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실시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위 사진을 보며 지금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를 그 골목길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