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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의 젖줄' 포천, 풍성한 선물 같은 밥상···매운탕·이동갈비·가지찜 | 한국인의 밥상

엔터로그/다큐멘터리

2024. 5. 2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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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은 그 지역명이 안을 '抱(포)'와 내 '川(천)' 자로 이루어진, 즉 물을 품어 안은 고장이다. 포천이 품은 한탄강은 북한 평강 지역에서 발원하여 포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중서부의 젖줄이다.

 

또한, 한탄강은 화산 활동으로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협곡과 기암괴석, 주상절리 같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풍류를 즐길 줄 알던 우리 조상들은 그 풍광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50만 년 전의 화산 활동과 그것을 즐긴 다양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문화와 풍광이 살아 있는 오늘의 포천을 만들었다. 또 질 좋은 물을 좇아 포천에 사람들이 모이니, 밥상은 자연스레 풍성해졌는데, 이번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포천의 매력에 빠져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밥상을 통해 시간과 물을 품은 포천의 진면목을 들여다본다.

 

한국인의 밥상

한탄강의 품에 안기다!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어복을 타고난 것일까? 그가 한탄강에 그물을 드리우면 온갖 물고기들이 그 안으로 모인다. 그 복 받은 이는 바로 한탄강 청년 어부, 김은범(36세) 씨. 은범 씨는 7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부가 되었다. 사실 한탄강에서는 어업권을 가진 어부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데 은범 씨도 그중 한 명이다. 잉어, 메기, 붕어, 쏘가리 등 다양한 어종의 이름을 외우고 또 그걸 낚는 재미가 세상 제일 재미있다는 그.

 

그런데 그가 어부가 된 건 운명 같은 사건이었다. 원래 한탄강 어부는 은범 씨가 아닌 아버지의 꿈이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포천에 정착해 노년에 어부로 살아가려 했던 아버지가 병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셨는데, 바로 임종하는 날 어업권 허가가 나왔다. 마치 선물처럼. 은범 씨는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매일 아침 한탄강으로 향한다.

 

은범 씨가 물고기를 가득 잡아 오면 요리는 어머니 서명자(65세) 씨가 맡는다. 고추에 피라미를 넣은 튀김과 향긋한 봄 채소를 잘게 잘라 쏘가리에 넣어 푹 조려낸 쏘가리 조림. 그리고 민물고기 대표 요리인 매운탕까지 끓인다. 매운탕에는 명자 씨가 품질 좋은 콩으로 담근 된장을 넣는데, 물 좋은 고장에서 양질의 콩이 생산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버지와 함께 먹던 추억의 음식부터 어머니가 새롭게 개발한 음식까지. 한탄강이 허락한 한 상이 근사하게 차려진다. 좋은 걸 나눌 때면 남편이자 아버지가 떠올라 애틋하고 그리워진다는데. 아버지의 꿈을 이루고 그의 몫까지 산다는 생각에 은범 씨와 명자 씨는 함께하는 하루의 순간들을 더욱 소중하게 보낸다. 한탄강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고 앞으로 그려나갈 시간을 함께한다.

 

포천의 명물, 갈비의 추억!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포천시 이동면에 가면 이동갈비를 파는 오래된 먹자골목이 있다. 이동갈비는 1960년대, 이동면 일대에 밀집된 부대의 군인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군인을 대상으로 한 만큼 초창기에는 갈비의 양이 많고 값은 싸야 했다.

 

그래서 갈빗대에 붙은 살을 이쑤시개로 연결한, 이른바 ‘짝갈비’가 등장해 군인들을 든든하게 먹였다. 장교들의 회식 메뉴이자 장병들의 면회 음식이었던 이동갈비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건 1980년대, 등산객과 맑은 약수를 뜨러 온 사람들의 소비 덕분이다.

 

이동갈비가 입소문을 타면서 한때 골목에는 200개가 넘는 가게가 있었다. 이름난 골목에서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성국(77세), 남성윤(76세) 씨 부부. 이들은 이동갈비가 인기를 얻길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그 맛을 이어오고 있다.

 

초창기에 다른 가게와 마찬가지로 부부의 가게를 찾는 이들도 장교나 병장, 면회객들이었다. 오랜 세월을 품은 만큼 옛 추억을 떠올리는 장병들의 발길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끊기지 않는다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부부는 감사함과 보람을 느낀다.

 

이 집에는 남성윤 씨가 개발한 자랑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자투리 고기와 늙은 호박을 이용해 끓인 된장찌개다. 직접 담은 된장으로 끓인 찌개의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추억의 맛으로 기억된다. 분단의 아픔과 배고픈 시절의 가슴 짠한 이야기들은 이제 오래된 골목의 역사가 되었다. 자식을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정을 주고받던 골목의 옛 추억을 만나본다.

 

한국인의 밥상

가족을 부르는 희망의 강! –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포천시 북쪽 끝자락, 한탄강을 접하고 있는 일대에 푸른 밭이 있다. 하얀색 꽃이 활짝 핀 이곳은 강효정(41세) 씨의 사과밭. 기후변화로 포천에서 사과 농사가 본격화되던 20년 전, 효정 씨의 부모님은 강변의 후미진 논밭을 사과밭으로 바꾸었다. 한탄강변에 자리한 효정 씨네 땅은 질어서 논농사를 짓기 힘든 땅이었지만, 사과 농사를 짓는 지금은 물 좋고 일교차가 큰 사과 명당이 되었다.

 

명당엔 사람이 모이는 법이던가? 도시에서 건설사를 다니던 효정 씨는 부모님의 뒤를 잇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고, 어느덧 귀농 11년 차가 되었다. 포천은 일교차까지 커서 사과 농사의 적임지로 주목받고 있어 요즘, 한탄강변 사과밭에선 활기가 넘쳐난다.

 

효정 씨가 살고 있는 마을 또한 물이 유명한데, 그 이름도 찬우물 마을이다. 집과 마을 곳곳엔 우물이 있는데 효정 씨네도 3대째 우물물을 길어 쓰고 있다. 양동이로 금방 퍼 올린 물을 이용해 어머니 이명희(64세) 씨가 요리를 시작한다. 가지에 칼집을 내어 소를 넣고 찌는 가지찜과 무청과 돼지고기를 푹 졸여 먹는 무청 장조림까지. 실향민인 시부모님께 배운 이북 음식이란다. 시간이 흘렀지만, 집안의 내림 음식으로 명희 씨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포천은 닭을 많이 키우는 고장으로 유명한데, 둘째 강문정(39세) 씨가 닭을 이용해 새로 개발한 음식을 선보인다. 어머니가 만든 사과 고추장으로 닭을 양념해 채소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 완성하는데. 땀 흘리는 여름,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시간과 물이 만들어낸 사과밭 한 상. 그 풍성한 밥상을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