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 횡단보도놀이단

본문

촛불이 전국을 뒤덮으며 긴장감이 극에 달하던 지난 6월초. 경찰의 본격적인 강제진압에 맞서 '비폭력'을 외치며 하룻밤을 지샌 시민들은 아침이 밝아오자 '횡단보도놀이'를 선보이며 평화적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3달이 넘게 계속된 촛불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오히려 강경대응으로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며 촛불에 걸었던 희망도 사그라드는 촛불과 함께 절망으로 변하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촛불집회를 바라보면 처음 촛불이 불을 밝히던 그 때의 여유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입니다.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 8월 8일 늦은 오후, 많은 이들의 눈과 귀가 중국 베이징을 향하고 있던 시간. 대구시청 인근의 한 네거리에는 따가운 햇살아래 굵은 땀방울을 흘려가며 줄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6시가 되면 신호등에 맞춰 공평네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며 촛불을 이어가고있는 횡단보도놀이단입니다.

한차례 횡단보도놀이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그분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먼저, 횡단보도놀이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저녁마다 모여서 촛불문화제를 하는 정도로 만족하지 말고 조금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법의 행동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여러가지 방안을 고민하다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가능한한 합법적인 틀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느냐는 생각과 횡단보도를 건너시는 분들과 차를 타고 가시는 분들 등 시민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묻자 대부분은 무관심한 편이고, 가끔 횡단보도놀이를 훼방을 놓는 분도 있지만 반대로 지지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8일의 경우, 한 시민께서 더위에 수고한다며 주신 돈으로 횡단보도놀이단 참가자들이 목을 축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공평네거리에서 횡단보도놀이를 계속할 것인지 묻자 매주 금요일 오후6시 공평네거리에서 계속 해왔지만 매번 횡단보도놀이가 끝나면 참가자들끼리 다음 주에 있을 횡단보도놀이의 초점과 장소 등을 논의한 후 결정하기때문에 확실한 것은 말할 수 없다며, 아마도 8월 한달동안은 같은 장소에서 계속되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시더군요.

덧붙여, 자신들이 횡단보도놀이를 시작한 것은 자신들 뿐 아니라 여러 동네, 여러 지역에서 이러한 것이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며 많은 분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동참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난 횡단보도놀이단은 다시금 푸른 신호등이 켜지기를 기다라며 횡단보도 앞으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진정으로 기다리는 것은 횡단보도의 신호등이 아니라 마음 속 푸른 신호등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