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원조에서 발을 빼는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진 해입니다. 이재명 정부도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026년 ODA 규모는 5조 4,372억 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지난해 6조 5,010억 원에서 1조 638억 원, 16.4%를 덜어낸 액수입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라는 간판이 붙었습니다.
흔히 이런 삭감은 '한국이 국제 기여를 회피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2025년 국제 흐름을 놓고 보면 그림이 조금 다릅니다. OECD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전체 원조는 2025년에 23.1% 줄었습니다. 기록이 남은 이래 가장 큰 감소폭입니다. 미국이 절반 넘게 깎았고, 독일·영국·프랑스·일본까지 상위 다섯 공여국이 처음으로 동시에 원조를 줄였습니다. 2026년에도 5.8% 더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삭감은 '유별난 인색함'이라기보다 '흐름에 올라탄 후퇴'에 가깝습니다. 비판의 초점도 여기서 옮겨가야 합니다. 문제는 남들 다 늘릴 때 혼자 줄인 게 아닙니다. 모두가 물러설 때, 오히려 존재감을 살 수 있는 드문 창을 스스로 닫았다는 데 있습니다. 원조가 귀해질수록 그 자리를 지키는 공여국의 이름값은 평소보다 크게 매겨지기 때문입니다.
| 구분 | 2025년 | 2026년 |
|---|---|---|
| ODA 총규모 | 6조 5,010억 원 | 5조 4,372억 원 |
| 사업 수 | 1,928개 | 1,763개 |
| 시행기관 | 41개 | 37개 |
| 자료: 외교부·국제개발협력위원회 제56차 회의(2026년 2월) | ||
1년 사이 예산은 1조 원 넘게, 사업은 165개, 시행기관은 네 곳이 줄었습니다.

정부의 설명에도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2024년 한 해에만 ODA가 40%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통상적인 증가 속도를 크게 벗어난 폭입니다. 그 급증 구간에는 캄보디아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로 향한 원조가 있었고, 이 대목은 현재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됐습니다. 기획재정부가 '급격히 늘어난 예산을 정상 추세로 되돌린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재정 여건도 빠듯합니다. 고령화로 의무지출이 매년 불어나는 상황에서, 대외 원조는 손대기 쉬운 항목입니다.
문제는 그 '정상'의 기준선이 이미 낮다는 점입니다. 한국의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율은 2025년 기준 0.2% 안팎입니다.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고, 34개 회원국 가운데 비율로는 22위에 머뭅니다. 정부가 오래전 국제사회에 제시한 목표는 2030년까지 0.3% 달성이었습니다. 그 선에 닿기도 전에 방향을 반대로 튼 셈입니다. 되돌린다는 말이 무색하게, 애초에 충분히 높았던 적이 없습니다.
신인도는 규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앞세우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원조를 국익 중심으로 재편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기업의 진출 교두보, 자원 확보 연계, 첨단 기술 수출 같은 표현이 전면에 놓였습니다. 공여국의 계산이 선명할수록, 받는 쪽에서는 '원조를 도구로 쓴다'는 인상을 받기 쉽습니다. 개발협력의 오랜 문법인 '수원국 주인의식'과 부딪치는 지점입니다.
삭감의 우선순위도 신호를 남깁니다. 2026년 외교부 예산에서 개발도상국 인도적 지원 항목은 절반 가까이 줄었습니다. 기아나 보건처럼 생존에 가장 가까운 원조가 먼저 깎이면, 밖으로 읽히는 메시지는 분명해집니다.
지금은 원조가 세계적으로 귀해진 시기입니다. 모두가 지갑을 닫을 때 한 걸음 남겨두는 중견국은 평소보다 훨씬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스스로 내세워온 중견 공여국이라는 위상과 실제 예산의 방향이 어긋날 때, 그 격차가 곧 신인도의 비용으로 돌아옵니다.
원조를 줄이는 일 자체가 곧바로 잘못은 아닙니다. 부풀었던 폭을 손보는 것도, 새는 곳을 막는 것도 필요한 조정입니다. 다만 무엇을 지키며 줄일지, 무엇을 앞세우며 물러설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모두가 뒤로 물러서는 국면에서 한국이 남겨둔 한 걸음이 몇 년 뒤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지금의 선택이 이미 답을 정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