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가 2027년 정부 예산에 반영해 달라며 국회에 들고 간 사업은 22개입니다. 대구시 집계로는 총사업비를 합쳐 16조 원을 웃돕니다. 목록이 길수록 대구의 미래를 촘촘히 챙긴 듯 보입니다. 그런데 재정이 빠듯한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이 22개라는 숫자가 강점이 아니라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난 7월 9일 추경호 대구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14명이 국회에서 첫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었습니다. 대구시가 잡은 2027년 국비 목표는 9조 5,629억 원, 전년보다 5.5% 늘린 액수입니다. 이 자리에서 22개 사업을 앞세워 증액을 밀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산술입니다. 국비 목표가 늘었다 해도 새로 더 받아내야 할 몫은 한정돼 있습니다. 그 몫을 22갈래로 쪼개면 사업 하나에 돌아가는 예산은 얇아집니다. 예산이 얇으면 착수는 해도 임계치를 넘지 못합니다. 정부 예산은 한정된 재원을 두고 지역끼리 겨루는 자리입니다. 대구가 스무 개를 조금씩 미는 동안 다른 지역이 한두 개에 화력을 몰면, 결과는 갈립니다. 나눠 담을수록 접시는 빕니다.

22개를 성격별로 갈라 보면 그림이 분명해집니다. 상임위 소관으로는 AI·로봇 등 산업 사업이 9개로 가장 많고, 철도·도로 같은 교통 사업이 7개로 뒤를 잇습니다. 열여섯 개가 두 갈래에 쏠려 있습니다.
| 사업 묶음 | 대표 사업 | 실현의 핵심 열쇠 | 임기 4년 내 체감 |
|---|---|---|---|
| AI·로봇 첨단산업 (9개) | 국산 AI 반도체, 휴머노이드 훈련센터, 미래모빌리티 AI 검증 | 기획예산처 예산 반영·연구개발 성과 전환 | 착수 가능, 성과는 임기 밖 |
| 광역교통망 (7개) | 달빛철도, 대구경북 광역철도, 구미~군위 고속도로 | 대규모 국비·예비타당성·국회 심의 | 착공도 빠듯, 완공은 임기 밖 |
| 신공항·행정통합 |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국가사업 전환 | 신공항 특별법 개정(국회) | 시장 권한 밖, 요구·협의 |
| 생활·민생경제 | 소상공인 지원 등 | 대구시 조례·예산 | 직접 결정, 임기 내 체감 |
| 자료: 대구시 2027년 국비 건의 사업(2026년 7월 9일 예산정책협의회). 상임위 소관 사업 수는 산업·교통 분류 기준이며, 실현 주체·시점 구분은 사업 성격에 따른 정리입니다. | |||
임기 안에 시민이 체감할 사업일수록 대구시가 직접 결정하고, 간판 사업일수록 열쇠는 국회와 기획예산처가 쥐고 있습니다. 시간표도 임기를 넘어섭니다. 대구경북 광역철도만 해도 총사업비가 2조 원을 훌쩍 넘고, 통합신공항을 국가사업으로 돌리려면 특별법부터 고쳐야 합니다. 법을 바꾸는 주체는 국회이지 대구시장이 아닙니다. 시장이 임기 안에 약속할 수 있는 건 대부분 완공이 아니라 착수입니다.
추경호 대구ㅜ시장은 협의회를 마친 그날 오후 대구에서 제1차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지역 경제가 오래 가라앉았다는 진단을 스스로 내놓은 자리였습니다. 곳간이 넉넉하면 스무 개를 다 밀어붙여도 됩니다. 지금은 그럴 형편이 아닙니다.
같은 날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가 호남으로 쏠린 정부안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국가 반도체 투자의 물길이 바뀌는 중입니다. 이런 국면에서 대구가 22개를 고루 벌여 놓으면, 어느 하나도 중앙과 겨룰 체급이 못 됩니다. 차라리 AI·로봇 한 축, 광역교통 한 축으로 좁혀 깃발을 세우는 편이 협상 테이블에서 무겁습니다.
한 가지 더 짚을 대목이 있습니다. 과거 지방 연구개발 예산은 건물과 장비를 짓는 데 쏠려, 정작 지역 기업의 매출이나 일자리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반복됐습니다. 예산과 성과는 다릅니다. 인프라를 깔고 나서 사람과 사업을 붙이는 후속 전략이 없으면, 22개든 서너 개든 빈 건물만 남습니다.
결국 물음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22개를 조금씩 살려 두는 것과 서너 개를 확실히 끝내는 것 중, 4년 뒤 대구에 실제로 남는 쪽은 어디일까요. 이번 국비 전략의 성패는 목록의 길이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했는지에서 갈릴지도 모릅니다. 스무 개의 접시 대신 어느 접시를 먼저 채울지, 임기 첫해의 예산 성적표가 그 답을 보여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