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래미 피고 지고 몇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나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 '비내리는 고모령' 중에서
'비내리는 고모령'은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베사메무초'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한국대중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故
현인 선생의 대표곡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노래 제목과 가사에 등장하는 '
고모령'이 바로
대구에 있는 지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드물 것입니다.
노래의 배경이 된
고모령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로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징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유호(작사)ㆍ박시춘(작곡) 콤비가 현인과 함께 1948년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며 돌아볼 고(顧)와 어미 모(母)를 쓴 고모령이라는 지명이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며 당시의 고모령을 쉽게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만촌체육공원내 만촌자전거경기장 앞에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세워져 있어 고모령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고모령 아랫 쪽엔 또 다른 이야기를 담은 자그마한 간이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고모역입니다.
1925년 영업을 시작한
고모역은 경부선 동대구역과 경산역의 중간쯤에 자리잡은 철도역으로 통근열차와 완행열차 등이 정차했지만 승용차가 크게 늘어나면서 2004년 여객취급이 중단된 후 지금은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고모역 앞에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기 1년전인 2005년에 다시금 승객들의 발길이 많아지길 바라며 세워진
박해수 시인의 '고모역' 시비가 자리하고 있는데, 당시의 바람과는 달리 지금은 고모역을 찾는 이도 시를 노래하는 이도 없는 간이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모역에 가면
옛날 어머니의 눈물이 모여 산다
뒤돌아보면 옛 역은 스러지고
시레기 줄에 얽혀 살던
허기진 시절의 허기진 가족들
아 바스라지고 부서진 옛 기억들
부엉새 소리만 녹슨다
논두렁 사라진
달빛 화물열차는 몸 무거워
달빛까지 함께 싣고
쉬어 가던 역이다'
- '고모역' 중에서
자식들을 위해 정성들여 키운 닭과 오리를 싸들고 장에 팔러 가던 어머니의 모습도 고향을 떠나는 자식을 눈물을 훔치며 마중하던 모습도 지금은 모두 추억으로 고모역에 남겨져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의 추억 한켠에 자리하던 옛 서울역은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옛 남원역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옛 반야월역은 작은 도서관으로 재탄생(관련글:
반야월 역사, 작은 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나다!)하며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도 한데, 철조망에 갖힌 고모역 또한 '비내리는 고모령'을 동기로 한 (현인) 노래 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