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6월 29일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통해 반도체·데이터센터·로보틱스·전력 인프라 분야의 대규모 투자와 전략산업 다극화 구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도 호남권 신규 반도체 클러스터를 포함한 투자계획을 밝혔다.
반도체와 AI 산업의 입지는 어느 한 지역의 유불리나 정파적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경쟁력과 국토 구조의 미래를 좌우하는 국가적 과제다. 에너지전환포럼(이하 포럼)은 첨단산업을 수도권 일극(一極)에 집중시키지 않고, 전력 공급 여건과 재생에너지 확대 가능성이 큰 지역으로 산업 입지를 분산하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과 기업의 투자 결단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여전히 '수도권 공장 우선 집중 건설'에 방점을 둔 계획을 밝히고 있어, 정부와 기업들이 실제로 호남권 신규 반도체공장 투자 실행 의지가 분명한지 의문이 남는다. 29일 정부 보도자료 및 참고자료에 따르면, ①"평택(삼성) 생산라인 가속화로 5년 내 D램 메모리 생산 능력을 2배 확대"하고, ②"용인 국가산단과 일반산단 최종 팹 완공 시점을 각각 7년, 12년 단축"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가산단(시스템반도체)의 최종 완공시점이 2047년에서 2040년으로, 일반산단(D램 등)의 경우 2045년에서 2033년경으로 앞당겨진다는 의미다. 반면 호남권 반도체 투자계획은 대략적인 착공 시기조차 생략되어 있어 불확실성이 크게 남아 있다.
이에 포럼은 국내에 잘못 알려져 있는 수도권 전력수급문제, 재생에너지 간헐성 논란, 반도체공장 용수문제의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럼은 정치권이 비생산적인 정쟁화를 중단하고, 정부가 국토균형발전 원칙을 일관되게 추진할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이번 메가프로젝트는 여야의 정쟁이나 지역 간 이해다툼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호남과 영남을 갈라 세우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더욱 안 된다. 핵심은 어느 지역에 공장을 두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5~10년 안에 필요한 전력과 재생에너지를 적기에 확보하고 첨단산업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키워낼 수 있느냐에 있다.
수도권의 전력문제는 단순한 '송전선 병목' 문제가 아니라 '전압안정도 제약'이라는 시스템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수도권의 전력 수요는 전국의 약 43%에 이르지만 자급률은 66%에 그치고, 장거리 송전에 의존해 전압이 불안정한 상황이다.이 때문에 한국전력거래소는 일부 송전선 고장이 발생할 경우 전압급락과 광역정전으로의 파급을 방지하기 위해 송전 허용량을 설비용량의 25%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지역 송전이용률 약 50%의 절반이며, 남부-수도권 간 송전을 위해 남부-남부 간 송전 대비 2배 더 많은 송전선로를 건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용인반도체 총 10개 팹 건설계획에 장거리 초고압송전선 15개 선로가 필요하다. 밀양 송전탑 갈등, 하남변전소 사례처럼 단일 송전선로 건설도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다면 비현실적인 계획에 가깝다.
남부-수도권 간 장거리 송전문제로 인한 전압 불안정은 수도권에 건설되는 공장들이 제때에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일으키면서, 전남, 충남, 경북 등 비수도권 지역도 200%가 넘는 높은 전력자급률과 높은 재생에너지 잠재량을 갖췄음에도 더 이상 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지 못하는 문제까지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반도체공장 등 대형 전력 수요의 지역분산은 전력시스템 안정에 기여하며, 신규 송전선로를 줄이고 선로 길이를 단축해 건설 기간과 비용 부담을 덜며, 주민 수용성도 개선할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이자 필수과제다. 이제는 전력망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산업시설, 발전시설 등 전력망 말단설비 건설계획을 재편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 육지 대부분의 공장들은 사실상 단일 전력망으로 연결되어 매순간 자동으로 수요와 공급 균형이 유지된다. 이론적으로는 전력망에 접속만 되어 있으면 기업은 RE100 이행에 필요한 재생에너지를 전국 어디에서나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권은 더 이상 신규 산업 수요를 수용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 RE100 가입 기업들은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해 전압 제약을 받고 있는 수도권 이외에서 부지를 찾아야 하며, 재생에너지 잠재량이 풍부한 지역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에게도 국가전력망 안정에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일부 정치권은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재생에너지는 간헐적이고 반도체 공장용 전력으로는 부족하다면서 호남권 반도체 투자계획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마치 호남권 반도체공장이 다른 지역과 완전히 고립된 전력망 위에 건설되는 것처럼 전제할 때에만 성립하는 주장이다. 결국 이러한 주장은 전력망의 실제 운영 방식과 부합하지 않으며, 수도권 집중 구조를 유지하고 국토균형발전을 가로막는 태도를 합리화할 뿐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국내외에 약속한 RE100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전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수도권의 지역별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비중은 경기가 2.9%, 서울이 0.6%에 그치고, 전력 소비가 많은 평택과 화성, 용인 또한 각각 0.9%, 1.8%, 0.9%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기존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공장계획은 지역에서 어렵게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와서 소비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지역보다 훨씬 긴 송전선로 건설이 필요하고, 약 300km에 이르는 경과지에서 주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전북과 충청권 송전선로 경과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고, 이러한 주민갈등만으로도 반도체공장 사업이 제때 추진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불균형은 비단 전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주택과 교통, 인력과 토지의 부담이 모두 수도권에 과도하게 쏠려 있는 반면, 많은 지역은 산업 기반 약화와 청년층 유출,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요컨대 수도권은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과밀하고, 지역은 성장의 동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양방향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은 이미 막대한 전력 수요가 집중되어 있는 만큼, 재생에너지와 수요관리 자원을 빠르게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신규 산업 전력 수요는 전력과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지역으로 분산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여건이 우수한 비수도권 지역에 첨단 대규모 산업시설을 배치투자하면 전력망 안정화, 송전선로 축소와 단축, 산업 유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주민수용성 개선 등 수도권과 지역 모두 큰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첨단산업의 지역 분산은 단순히 생산시설을 지방에 더 두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전력과 재생에너지, 연구개발과 소부장 기업, 그리고 이를 떠받칠 배후도시가 함께 성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메가프로젝트와 관련해 일부 정치권에서는 "물부족 문제 때문에 호남권 반도체계획이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해외 반도체 기업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주장이 단편적인 것이라는 점이 바로 드러난다. TSMC는 만성적 물부족과 가뭄을 겪고 있는 대만의 악조건에서도 반도체공장의 지속적인 산업폐수 재활용 혁신을 통해 지난 2023년 용수재활용률 90.3%를 달성한 바 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북부 사막지대에서 건설 중인 '팹 클러스터' 공장에서도 이미 산업용수 재활용설비(IRWP)를 착공해, 가동되는 2028년에는 물 재활용률을 85%에서 9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임을 발표했다.
TSMC는 용수재활용률을 기존 65%에서 90%로 끌어올리면 1개 팹의 하루 용수 수요를 약 1만 8천 톤(475만 갤런)에서 4,500톤 미만(120만 갤런 미만), 즉 4분의 1 이하로 줄일 수 있으며, 웨이퍼 세정에 필요한 초순수까지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6월 29일 정부와 국내 반도체기업들은 서남권 반도체 4개 팹의 필요용수가 하루 65만 톤, 즉 1개 팹 기준 16만 3천 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TSMC가 90% 재활용 달성 시 제시한 1개 팹 용수 수요(하루 4,500톤 미만)의 약 36배에 달하는 수치다. TSMC 수치가 상한값인 만큼 실제 격차는 이보다 더 커질 수 있다. 생산라인뿐만 아니라 산단 전체를 감안한 수치라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격차로, 사실상 용수재활용을 전혀 하지 않겠다는 발상에 가깝다. 물부족 지역에서 TSMC의 높은 용수 재활용 실적과 투자는 국내 반도체 업체들에게 그만큼 더 많은 혁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만 재활용률이 높을수록 수십 MW급의 전력이 필요하기에, 결국 반도체공장의 물문제는 전기문제, RE100 기준으로는 재생에너지 확보문제로 수렴된다. 이러한 점에서 호남권이 타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수자원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앞선 TSMC의 사례는 호남권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활용과 용수재활용기술 고도화를 통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력자급률과 도매원가는 수도권과 지역 간 격차가 크지만, 그동안 전국 단일 전기요금제라는 명분 아래 이러한 현실은 철저히 무시되어 왔다. 이제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에 의거해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시행되어야 한다. 지역별 차등제는 그 명칭 탓에 일각에서 "송전거리에 따른 요금차등제" 또는 "송배전요금 지역차등제"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역별 차등제의 원뜻은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지역별 한계가격제(LMP)'로, 지역별 전력 수요와 공급 간 경쟁입찰을 통해 지역별 전기의 원가를 전기요금에 투명하게 반영하는 데 있다.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시행되면 당연히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면서 송전망 부족 현상과 높은 계통 비용을 유발하는 수도권의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미국·싱가포르의 LMP, 북유럽·호주의 구역별 요금제 등 정교하게 확립된 제도임에도 국내에서는 생소한 개념이기에 수도권 기업들의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그동안 수도권이 정당한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은 채 지역의 전력자원에 무임승차해온 불공정한 관행을 바로잡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정치적 왜곡과 정쟁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별 차등제의 진정한 목적은 정확한 원가 신호를 통해 각 지역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과 유연한 계통 운영, 효율적인 전력망 계획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정부는 지역별 차등제 시행에서 정치적 유불리를 따져 원가를 왜곡해서는 안 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망 구조 개편'이라는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진다는 비상한 각오로 제도를 안착시켜야 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정부의 정책 방향과 기업의 투자 결단이 정쟁과 지역주의를 넘어, 수도권의 수요 관리 및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역의 첨단산업 성장을 동시에 이끄는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에너지전환포럼 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