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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어떻게 떡볶이의 성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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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구라는 이름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노포 계보가 길고, 전국구 프랜차이즈 본점이 몰려 있고, 사흘짜리 떡볶이 축제까지 열립니다. 그래서 대구를 성지로 부르는 설명에는 으레 오래된 역사가 따라붙습니다. 대구 떡볶이의 뿌리를 전쟁 직후까지 끌고 가는 이야기입니다.

 

자료를 따라가 보면 바로 그 대목이 가장 약합니다. 확인되는 기록은 훨씬 뒤에서 시작합니다. 성지라는 자리를 만든 힘은 물려받은 역사가 아니라 최근 스물몇 해 사이의 선택 쪽에 가깝습니다.

성지의 뿌리는 생각보다 얕아

자주 인용되는 설명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6·25 전쟁 뒤 원조 밀가루가 들어왔고, 값싼 밀가루가 포장마차 떡볶이로 이어졌고, 공단 노동자들이 매운맛을 찾았다는 흐름입니다. 앞부분은 맞습니다. 미국산 밀가루 유입과 분식장려운동으로 국수와 수제비가 밥상에 올라온 사정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밀가루가 대구역을 거쳐 전국으로 풀렸다거나, 특정 시장의 포장마차 골목이 시초라거나, 공단 노동자의 수요가 매운맛을 만들었다는 대목은 어느 출처로도 확인되지 않습니다. 분식장려운동은 전국 단위 정책이었습니다. 대구만의 조건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이 지역 떡볶이의 계보를 적을 때 첫 줄에 올리는 해는 1974년입니다.

후추와 카레로 갈라진 계보

윤옥연할매떡볶이는 1974년 신천시장 포장마차에서 출발했습니다. 대구시 자료는 1976년으로 적고 있어 기록이 갈립니다. 단맛을 빼고 후추 향을 세게 낸 국물 떡볶이에 밀떡을 씁니다. 튀긴 만두와 오뎅을 곁들이고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시키는 '천천천' 주문, 매운맛을 눌러 주는 쿨피스까지 한 묶음으로 굳었습니다.

 

1979년 문을 연 중앙떡볶이는 다른 길로 갔습니다. 굵은 쌀떡을 쓰고 카레 향을 얹습니다. 대구 명물인 납작만두를 섞어 파는 메뉴가 여기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달콤한 쪽을 맡은 달떡 계열은 튀긴 삼각만두를 고명으로 올려 값을 낮췄습니다.

 

시차를 보면 하나의 원조에서 갈라져 나온 모양이 아닙니다. 5년 안팎을 두고 서로 다른 맛이 따로 섰습니다. 대표 선수를 먼저 정하고 뒤따라간 도시가 아니라, 갈래가 먼저 생기고 이름이 나중에 붙은 셈입니다. 1990년대 후반에 궁전·황제·신전·빨간지붕이 한꺼번에 쏟아진 배경도 이 바닥이 넓었던 데 있습니다.

 

대구 북구 칠성로에 있는 신전떡볶이 본점
대구 북구 칠성로에 있는 신전떡볶이 본점

대구 떡볶이를 판 건 매운맛이 아냐

1999년 칠성동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신전떡볶이는 2024년 10월 기준 813호점을 넘겼습니다. 국내와 해외를 합친 숫자입니다. 북구 관음로에는 세계 최초를 표방한 떡볶이 박물관 신전뮤지엄이 서 있습니다. 매장 수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양념 제조와 물류를 본사가 쥔 구조 쪽입니다.

 

수출은 더 분명합니다. 1993년 대구에서 문을 연 농업회사법인 영풍은 2024년 기준 2,610만6,000달러를 수출했습니다. 같은 해 국내 전체 떡볶이 수출액 7,776만6,000달러의 27%에 해당합니다. 이 회사의 무기는 맛이 아니라 보관입니다. 색소와 보존료 없이 상온에서 최대 12개월을 버티는 떡 가공 기술로 냉장 유통이 약한 나라까지 들어갔습니다. 수출국은 2024년 108개국에서 2025년 120개국으로 늘었습니다.

 

여기서 갈라지는 지점이 하나 생깁니다. 세계 식탁에 오른 대구발 떡볶이는 후추 향 강한 국물 떡볶이가 아닙니다. 컵에 물을 붓고 데우는 간편식입니다. 맛의 성지와 수출의 성지는 같은 도시에 있지만 같은 물건은 아닙니다.

 

떡볶이 페스티벌

대박난 떡볶이 페스티벌

2021년에 처음 열린 떡볶이 페스티벌은 다섯 해 만에 대구 북구의 간판 행사가 됐습니다. 제5회는 2025년 10월 24일부터 사흘간 대구iM뱅크PARK 일원에서 열렸습니다. 애초 5월 개최였는데 의성 산불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되면서 가을로 밀렸습니다. QR 코드로 주문과 결제를 처리해 부스 앞 정체가 줄었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흥행 자체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방문객 수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발표 주체와 시점에 따라 세 개의 숫자가 남았습니다.

 

발표 주체 발표 시점 방문객 수
영남일보 추산 2025년 10월 29일 26만 명
북구 집계 인용(뉴스1) 2025년 10월 27일 27만 명
전문기관 최종 집계(북구청) 2025년 11월 33만 명
자료: 영남일보·뉴스1 보도, 대구광역시 북구청 발표, 2025년 기준

 

같은 사흘을 두고 26만 명과 33만 명이라는 7만 명 차이의 집계가 나란히 남아 있습니다.

 

275억 원으로 알려진 직접 경제효과는 1인당 소비액 8만3,400원에 33만 명을 곱해 나온 값입니다. 셋 중 가장 큰 숫자를 쓴 계산입니다. 27만 명을 대입하면 225억 원 근처로 내려갑니다. 성과를 인용할 때 어느 숫자를 골랐는지 함께 밝히는 편이 안전합니다. 방문객 구성은 대구 48%였고 나머지 절반 이상이 외지인이었는데, 이 비율만큼은 어느 집계를 쓰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떡볶이 성지는 지킬 수 있을까

2009년 정부는 한식 세계화를 내걸며 대표 음식으로 떡볶이를 골랐고 떡볶이연구소까지 세웠습니다. 그 연구소는 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같은 음식을 두고 구청이 기획한 축제는 다섯 해 만에 30만 명대를 모았습니다. 예산의 크기보다 운영의 문제였던 셈입니다.

 

뒤따라온 사례도 늘었습니다. 2022년 구미 라면축제, 2024년 김천 김밥축제와 원주 만두축제가 이어졌습니다. 특산물이 아니어도 축제가 된다는 것을 먼저 보인 쪽은 대구였습니다. 먼저 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리가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대구 떡볶이를 성지로 세운 힘은 오래된 뿌리보다 최근의 기획 쪽에 있었습니다. 노포의 계보는 50년, 프랜차이즈는 25년, 축제는 5년입니다. 만들어진 자리에는 유지 비용이 따라붙습니다. 다음에 대구에서 떡볶이 한 그릇을 앞에 두게 되면 한 번쯤 따져 볼 만합니다. 대구가 지켜야 할 것은 후추 향 나는 그 맛일까요, 그 맛을 상품으로 바꿔 온 기획력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