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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는 어떻게 프랜차이즈의 성지가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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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떡볶이, 저가 커피. 전국 어디서나 보이는 간판 가운데 상당수가 대구·경북에서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이 사실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답이 양계 인프라입니다. 닭을 싸게 구할 수 있었으니 치킨이 발달했고, 그 경험이 다른 업종으로 번졌다는 설명입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그 인프라는 30년 전에 대구 시내에서 사라졌습니다. 양계장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아파트와 고층 빌딩이 서 있습니다. 원인은 없어졌는데 결과만 남은 셈입니다. 대구 프랜차이즈를 이해하려면 이 시차부터 짚어야 합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부화장이 있던 대구

대구가 닭 요리를 잘해서 치킨의 도시가 된 것은 아닙니다. 순서가 반대입니다. 일제강점기 국내 최대 규모의 부화장이던 신기부화장이 북구 산격동에 있었습니다. 부화장은 병아리를 대주는 시설입니다. 대형 양계장은 대형 부화장이 뒤에 있어야 돌아갑니다.

 

1975년 기준 대구 안에만 부화장이 48개소 있었습니다. 서문시장·칠성시장·남문시장 같은 재래시장이 촘촘했고, 철도와 도로도 일찍 깔렸습니다. 대한양계협회 인용으로는 1970년대 국내 양계장의 80% 정도가 대구·경북에 몰려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정확한 원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집중도가 압도적이었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서 겹칩니다.

 

값싼 원료는 조리법 실험으로 이어졌습니다. 1978년 문을 연 대구통닭은 간장 프라이드치킨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1980년대 초에는 멕시칸이 양념 프라이드치킨을 내놓았고, 처갓집양념통닭이 뒤를 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한국식 치킨의 두 갈래가 이 무렵 갈라졌습니다.

양계 인프라는 이미 사라져

1960~70년대 한국 양계 산업의 1번지는 수성구 범어동과 황금동이었습니다. 지금은 대구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자리입니다. 어린이대공원 일대와 범어네거리 주변이 통째로 양계장 특구였습니다.

 

1990년대 들어 이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면서 양계장은 경산에 붙은 시지동·매호동 쪽으로 밀려났습니다. 대구의 양계업은 그렇게 도심 밖으로 나갔습니다. 도시에 남은 몫은 사육과 가공이 아니라 유통과 브랜드였습니다.

 

원료 조달이 유리해서 대구에 프랜차이즈가 많다는 설명은 1980년대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대구 토종 브랜드가 닭을 특별히 싸게 받는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인프라는 떠났는데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힘은 남았습니다. (관련글: '한국 치킨의 성지' 왜 대표 치킨 브랜드는 대구·경북에서 태어났을까?)

대구에서 살아남으면 전국 어디서나 통한다

대구는 대규모 제조업 기반이 얇은 편입니다. 그만큼 자영업 비중이 높고, 같은 상권에 비슷한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섭니다. 경쟁이 촘촘하면 검증 속도가 빨라집니다. 맛과 양과 가격 가운데 하나가 무너지면 손님은 바로 옆집으로 갑니다.

 

그래서 대구에서 몇 년을 버텼다는 이력 자체가 1차 품질 보증서로 읽힙니다. 신전떡볶이는 1999년 북구의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습니다. 2003년 동성로에 2호점을 낸 뒤 가맹 문의가 붙었고, 2014년 서울에 들어가면서 매장이 급격히 늘었습니다. 순서를 보면 서울 진출은 성공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습니다.

 

커피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습니다. 커피명가는 1990년 경북대 후문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스타벅스(Starbucks) 국내 1호점보다 9년 빠릅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전기를 직접 만들어 자가 배전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형 브랜드가 들어오기 전에 원두커피를 찾는 손님층이 먼저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브랜드 709개가 가리는 것

규모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25년 12월 기준 대구에 본부를 둔 식품 프랜차이즈 브랜드는 709개이며, 소속 가맹점은 1만 5천 개를 넘습니다.

구분 수량
식품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541개소
등록 브랜드 709개
소속 가맹점 15,379개소
자료: 한국공정거래조정원, 2025년 12월 기준

 

다만 이 집계는 대구에 가맹본부 주소를 둔 곳만 셉니다. 기준이 좁습니다. 대구에서 창업했다가 본부를 옮긴 브랜드는 여기에 잡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주소만 대구에 두고 매출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나오는 곳도 같은 칸에 들어갑니다. 산업 규모를 재는 자로는 쓸 만하지만, 지역 기여도를 재는 자로는 헐거운 편입니다.

 

대구시도 이 생태계를 관리 대상으로 다룹니다. 프랜차이즈 사관학교를 운영해 가맹 인력을 키우고, 공공 배달앱 대구로에 등록된 식품업체 9,000여 개소를 상시 점검합니다. 2026년에는 사관학교 안에 가맹사업 분쟁 관련 교육을 새로 넣기로 했습니다. 브랜드를 늘리는 정책에서 브랜드를 관리하는 정책으로 무게가 옮겨간 모양새입니다.

대구경북 대표 프랜차이즈 '교촌치킨'

본사는 왜 남지 않을까

대구·경북이 배출한 브랜드 가운데 가장 크게 자란 사례는 교촌치킨입니다. 1991년 3월 구미 송정동의 작은 통닭집에서 시작했습니다. 1994년 김천에 2호점을 내며 가맹사업에 나섰고, 2000년대 중반까지 경북 본사에서 전국 물류와 매장 관리를 직접 챙겼습니다.

 

그러다 2004년 본사를 경북 칠곡에서 경기 오산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판교로 다시 이전을 추진했습니다. 투자 유치와 인력 채용, 수도권 물류망을 한자리에서 처리하려면 서울 인근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브랜드의 고향과 본사의 주소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이 분리가 되풀이되면 대구에 남는 것은 창업 이력입니다. 법인세와 본사 일자리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성지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실속으로 보면 인큐베이터 쪽에 가깝습니다. 인큐베이터는 키워서 내보내는 곳입니다.

 

대구가 다음 10년에 붙잡아야 할 것은 브랜드 개수일까요, 아니면 그 브랜드의 본사 주소일까요. 두 목표는 필요한 정책 수단이 다릅니다. 창업 지원금과 본사 이전 방지책은 같은 예산에서 나오지만 겨냥하는 과녁이 갈립니다. 대구 프랜차이즈의 성적표를 앞으로 어느 숫자로 매길지, 그 합의가 먼저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