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부분만 들으면 일본 음식 같습니다. 야키소바와는 다릅니다. 대구 야끼우동은 대구 중식당에서 만들어진 한국식 중화 볶음면입니다. 마늘과 고운 고춧가루로 매운맛을 잡고, 센 불에 재료를 한꺼번에 볶아냅니다. 1974년에 처음 나온 메뉴가 어떻게 도시를 대표하게 됐을까요.
야끼우동을 처음 낸 사람은 중화반점 창업주 장유청입니다. 대구에 정착한 화교였습니다. 1974년 중국식 볶음면인 차오미엔(炒麵)을 대구 사람 입맛에 맞춰 고쳐 냈습니다. 기름을 크게 줄이고 마늘과 고춧가루를 얹은 것이 그가 손댄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팔린 메뉴는 아니었습니다. 반응은 더뎠습니다. 짬뽕도 우동도 아닌 애매한 정체가 손님을 망설이게 했습니다. 매운맛과 재료를 계속 조정한 뒤에야 단골이 붙기 시작했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구 중식당 차림표에 널리 올라갔습니다. 향토음식이라는 말과 달리 출발점은 이주 상인의 주방이었습니다.
| 상호 | 위치 | 성격 |
|---|---|---|
| 중화반점 | 대구 중구 남일동 | 1974년 야끼우동을 처음 낸 원조, 2대째 운영 |
| 유창반점 | 대구 중구 남산동 | 1977년 개업, 중화비빔밥으로 방송에 알려진 노포 |
| 리안 | 대구 수성구 만촌동 | 수성대 인근, 탕수육과 스페셜 야끼우동으로 대기 줄이 생기는 곳 |
| 자료: 대구푸드(대구광역시), 다이닝코드, 2026년 7월 확인 | ||
원조 중화반점과 유창반점은 모두 대구 중구 옛 도심에 자리 잡았고, 두 집의 시작은 1970년대였습니다.
재료 구성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양파와 배추, 호박, 숙주나물, 목이버섯이 기본으로 들어갑니다. 여름에는 부추가, 겨울에는 시금치가 붙습니다. 여기에 새우와 오징어, 돼지고기가 더해집니다. 조리법도 그대로입니다.
공식 설명과 실물이 어긋나는 대목도 있습니다. 대구시가 운영하는 소개 자료는 야끼우동을 국물 없는 음식으로 규정합니다. 반면 원조집을 다룬 기록은 국물을 자작하게 남긴다고 적습니다. 면을 건진 뒤 남은 양념에 밥을 비벼 먹는 방식이 대구에서 굳어진 것을 보면, 자작한 쪽이 현장에 가깝습니다.
매운맛으로만 보면 대구에는 경쟁자가 넘칩니다. 동인동 찜갈비도 맵습니다. 매운 조리법은 이 음식이 대구 안에서 퍼진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도시를 대표하게 된 이유까지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대구십미는 저절로 굳은 목록이 아닙니다. 2005년 대구음식관광박람회를 계기로 지역 음식을 관광 상품으로 키우자는 요구가 이어졌고, 대경음식포럼을 중심으로 세미나와 업계 회의가 거듭됐습니다. 대구시는 2006년 5월 관련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모아 열 가지를 골랐습니다. 이름은 서거정의 「대구십경」과 「전주 10미」에서 따왔습니다.
함께 오른 음식은 육개장, 막창구이, 뭉티기, 동인동 찜갈비, 논매기매운탕, 복어불고기, 누른 국수, 무침회, 납작만두였습니다. 대부분 연조가 깁니다. 야끼우동은 선정 시점 기준으로 서른두 해밖에 되지 않은 신생 메뉴였습니다. 그런데도 향토음식 명단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선정 기준이 드러납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보다 다른 도시와 겹치지 않는지를 본 쪽에 가깝습니다. 육개장이나 누른 국수가 세월로 자리를 얻었다면, 대구 야끼우동이 얻은 자격은 이 도시에서만 나온 메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 메뉴는 대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수도권 중식당 차림표에서는 볶음짬뽕이라는 표기가 더 흔하게 보입니다. 일본 음식으로 오해받는 이름을 피하려는 선택이었다는 설명이 따라붙지만, 전환 시점을 공적 기록으로 특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름이 바뀌자 지역 표지가 빠졌습니다. 볶음짬뽕에는 대구가 없습니다. 도시가 만든 음식이 전국에 퍼질수록 출처가 흐려지는 구조입니다.
대구시가 택한 대응은 상품화 쪽이었습니다. 판로가 문제였습니다. 2022년 외식업소 컨설팅 지원사업으로 대구 10미를 포함한 음식점 100곳의 대표 메뉴를 밀키트로 만든 '대구 밀키트 100선'이 나왔고, 2023년 7월 공공 배달앱 대구로에 밀키트 전용관이 열리면서 40개 업소가 먼저 입점했습니다.
경로를 되짚으면 세 단계가 보입니다. 화교 요리사의 개량, 대구 입맛의 수용, 2006년의 행정 지정입니다. 앞의 둘은 이 음식이 살아남은 조건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가 대표라는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대구 야끼우동을 향토음식이라 부를 때 걸리는 대목도 여기 있습니다. 50년 남짓한 메뉴입니다. 만든 사람은 화교였고, 이름은 일본어에서 왔고, 전국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팔립니다. 그런데도 대구를 대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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