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다녀온 사람은 막창을 먼저 떠올립니다. 도축장이 있어서 그렇게 됐다는 설명도 늘 따라붙습니다. 그런데 도축장은 대구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부산에도 대전에도 있었습니다. 같은 부산물을 쥐고도 도시마다 결과가 갈렸으니, 대구 막창의 자리는 재료가 아니라 그다음 선택에서 벌어진 셈입니다.
처음 팔린 형태부터 지금 알려진 것과 다릅니다. 구이가 아니었습니다. 첫 메뉴는 국이었고, 그 국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골목은 그 실패 뒤에 생겼습니다.
1969년 4월, 지금의 달서구 성당동 두류수영장 자리에 도축 전문 법인 신흥산업이 들어섰습니다. 이듬해 대구시립도축장으로 승격하면서 소와 돼지의 부속 부위가 대량으로 시장에 풀렸습니다. 값이 아주 쌌습니다. 정육을 걷어낸 나머지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0년대 초 김연순 씨가 옛 미도극장에서 남산초등학교로 넘어가는 이른바 합승도로변에 황금막창을 열었습니다. 처음 낸 메뉴는 곱창전골에 가까운 막창국이었습니다. 주당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미끈한 식감이 술안주로는 어정쩡했던 탓입니다. 끓이는 대신 굽기로 방향을 틀어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자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겉이 바삭하고 속이 쫄깃한 대비는 삶아 낸 내장에서 나오지 않는 식감입니다.
1970년대 대구는 섬유 공단이 밀집한 산업 도시였습니다. 고된 교대 근무를 마친 노동자에게 값싸고 양 많은 안주는 셈이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여름 열대야도 거들었습니다. 분지의 밤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 밖으로 나와 늦은 끼니를 찾았고, 골목마다 간이 테이블이 깔렸습니다.
대구시립도축장은 1981년 중리동으로, 2004년에는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로 옮겨 갔습니다. 원료 공급원이 두 차례나 상권에서 멀어졌습니다. 막창집은 줄지 않았습니다. 도축장 덕에 생긴 상권이었다면 도축장을 따라 이동했어야 합니다. 남은 것은 재료와의 거리가 아니라 손질과 가공 기술의 축적이었습니다.
부위부터 짚으면 혼동이 줄어듭니다. 소 막창과 돼지 막창은 이름만 같고 몸의 전혀 다른 자리입니다. 소 막창은 위이고 돼지 막창은 장의 끝부분이라 두 부위는 기관 자체가 다릅니다.
| 구분 | 소 | 돼지 |
|---|---|---|
| 막창 | 네 번째 위인 홍창. 붉은빛을 띠고 쫄깃합니다 | 대장 끝의 직장. 도넛 모양으로 썰어 굽습니다 |
| 곱창 | 소장. 안쪽의 곱이 고소한 맛을 냅니다 | 소장. 볶음이나 순대 부속으로 씁니다 |
| 대창 | 대장. 바깥에 지방이 두껍게 붙습니다 | 대장. 양념구이와 볶음에 쓰입니다 |
| 자료: 두피디아, 대구역사문화대전 | ||
조리에서 갈린 대목은 삶느냐 굽느냐입니다. 잡내를 잡으려고 미리 삶는 방식이 널리 쓰이지만, 전통 대구식은 생막창을 숯불이나 연탄불에 바로 올립니다. 강한 화력이 냄새를 날리고 불향을 입힙니다. 최근에는 초벌을 거쳐 내는 가게가 많아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소스가 맡습니다. 된장을 바탕에 두고 콩가루와 땅콩가루, 과일 즙을 섞어 묽게 만든 막장에 쪽파와 청양고추를 넣어 찍어 먹습니다. 기름진 맛을 눌러 주는 장치입니다. 2006년 대구시가 고른 대구 10미에 막창구이가 들어간 배경에도 이 조합이 있습니다. 막창구이가 부산물 요리에서 멈추지 않은 까닭은 재료보다 불과 장에서 찾는 편이 맞습니다.
1990년대 이후 노포의 조리법이 프랜차이즈로 옮겨 갔습니다. 대구반야월막창은 2003년 가맹사업을 시작하면서 동그란 막창을 갈라 납작하게 편 뒤 숯불로 초벌해 내는 방식을 표준으로 삼았습니다. 막창을 처음 먹는 타지 손님의 거부감을 낮추려는 설계였습니다.
막창도둑은 2013년에 뛰어들어 자체 공장 손질과 과일 숙성을 앞세웠고 미국과 중국, 베트남에도 매장을 냈습니다.

남구 대명동 안지랑 곱창골목은 다른 길을 갔습니다. 1979년 김순옥 할머니가 안지랑시장 인근에 연 충북식당이 출발점입니다. 본래 생선구이를 주로 하던 가게였고, 손님의 권유로 양념 돼지곱창을 굽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복어 양념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도 돌지만 확인되는 기록은 없습니다. 업소가 본격적으로 불어난 시기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였습니다. 생계를 잇겠다고 문을 연 가게가 몰리면서 골목이 채워졌습니다.
업소가 50~60곳대로 늘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맛이 제각각이면 골목 전체가 흔들립니다. 상인회는 본사를 세우는 대신 곱창 공장 두 곳을 지정했습니다. 구매와 손질, 자르기, 진공포장까지 공장이 맡고 각 업소는 자기 양념만 입힙니다. 품질을 고르게 맞추면서도 가맹 계약과 로열티는 끼어들지 않는 구조입니다.
성과는 외부 평가로 돌아왔습니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5대 음식테마거리로 뽑았고, 2015년에는 한국관광 100선에 들었으며, 2018년 다시 지정을 받았습니다.
도축장은 두 번이나 도시 밖으로 나갔고 공단의 교대 근무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조건은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대구 막창은 자리를 지켰습니다. 남은 자산이 재료의 근접성이 아니라 손질 기술과 골목의 운영 방식이었다는 뜻입니다. 부산물 하나로 이만한 상권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도시가 지금 또 있을까요. 조건을 갖춘 도시는 여럿이었는데 왜 여기만 남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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