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사과'의 도시였던 대구! 대구 사과는 다 어디로 갔을까?

본문

장을 볼 때 사과 상자에 붙은 산지를 보면 청송, 안동, 영주가 적혀 있습니다. 요즘은 정선이나 양구도 눈에 띕니다. 대구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1971년에 나온 대구찬가 '능금꽃 피는 고향'은 제목부터 사과였습니다. 길옥윤이 짓고 패티김이 부른 이 노래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흔히 대구 사과는 사라졌다고들 말합니다. 통계를 열면 이야기가 조금 다릅니다. 재배면적은 최근 몇 해 사이 오히려 늘었습니다. 나무가 돌아와서 생긴 변화는 아닙니다. 이 어긋남을 따라가면 대구가 사과를 잃어 온 경로가 더 선명해집니다.

대구 사과 명맥 잇는 청라언덕 사과나무

중구 청라언덕 선교사 주택 앞에 사과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세 번째 세대입니다. 1899년 의료 선교사 존슨(Woodbridge O. Johnson)이 미국에서 묘목 72그루를 들여왔고, 그중 한 그루에서 떨어진 씨앗이 자라 2세목이 됐습니다. 2세목은 2000년 대구시 보호수 1호로 지정됐다가 2018년 고사했습니다. 대비는 미리 해 두었습니다. 2007년 가지를 접붙여 키운 3세목이 2010년대 초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식 시점은 자료마다 2012년과 2013년으로 갈립니다.

 

처음 심은 자리도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남산동 자택 정원이라는 기록과 제중원 사택이라는 기록이 함께 남아 있고, 지금 청라언덕에 있는 나무는 1998년 그리로 옮겨진 것입니다. 도입 연도를 두고도 1892년 푸렛처 도입설이 오래 돌았습니다. 그가 1911년에야 대구에 부임한 인물이라는 점이 확인되면서 이 설은 정리됐습니다. 120년 남짓한 역사인데도 시작점이 여러 번 고쳐 쓰인 셈입니다.

대구 사과, 분지 기후가 만든 단맛

사과나무는 물이 고이는 땅을 견디지 못합니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지나는 동촌, 반야월, 하양 일대는 모래가 알맞게 섞인 사양토 지대였습니다. 뿌리가 숨 쉬기에 좋은 흙입니다.

 

기후는 더 결정적이었습니다. 사방이 산으로 막힌 분지라 여름은 뜨겁고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낮에 만든 양분이 밤사이 당분으로 쌓이려면 이 낙차가 필요합니다. 대구 사람을 해마다 괴롭히던 조건이 사과에게는 최적이었습니다. 여기에 대구역이 있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열리기 전까지 철도가 가장 빠른 물류였고, 인근 과수원의 사과는 이 역을 거쳐 전국으로 흩어졌습니다.

대구 쇠퇴의 원인: 도시화와 온난화

쇠퇴의 원인은 보통 둘로 정리됩니다. 도시화와 온난화입니다. 1970년대 이후 섬유산업이 커지고 인구가 불어나면서 칠성동과 반야월의 과수원 자리에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땅값이 오르자 농민들은 과수원을 팔았습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재배 적지는 경북 북부로, 다시 강원 정선과 양구 쪽으로 북상했습니다.

 

빠져 있는 원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부란병입니다. 1960~7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이 병이 번지면서 농사를 접은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베어낸 자리는 곧바로 택지가 됐습니다. 개발과 기후만으로 설명하면 이 시기의 가파른 감소 폭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시점 대구 사과 재배면적 비고
1960년대 초 9,523㏊ 전국 11,467㏊의 약 83%
2022년 말 121㏊ 군위군 편입 이전
2023년 7월 851㏊ 군위군 편입 직후
2024년 413㏊ 전국 재배면적 조사 기준
자료: 대구광역시 농업기술센터·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재배면적조사, 각 연도 기준

 

1960년대 초 전국 사과밭의 8할가량이 대구에 있었고, 2022년에는 121㏊만 남았습니다.

대구 사과, 통계로는 오히려 늘어

2023년 7월 군위군이 대구에 편입됐습니다. 그날 대구의 사과 재배면적은 121㏊에서 851㏊로 뛰었습니다. 이듬해 전국 조사에서는 413㏊로 잡혔고, 전년 대비 380% 증가로 기록됐습니다. 기관마다 숫자가 다릅니다. 조사 방식과 기준 시점이 서로 다른 탓입니다. 어느 값을 쓰든 나무가 늘어서 생긴 변화는 아닙니다.

 

군위는 그 자체로 오래된 사과 주산지입니다. 1990년대까지 1,700여㏊였다가 지금은 720~730㏊ 수준으로 줄었고, 그래도 대구 전체 사과밭의 8할 이상을 차지합니다. 행정구역선이 옮겨 다니는 동안 통계 속 대구 사과는 되살아난 모습이 됐습니다.

 

같은 기관이 다른 말도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 추세로 이어지면 2030년 무렵 대구가 사과 재배 가능지에서 빠진다는 전망입니다. 면적은 되돌아왔고 기후는 반대로 갑니다. 이 두 숫자가 한 표에 나란히 놓이는 일은 좀처럼 없습니다.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 나무, 대구시
대구 동구 평광동 사과 나무, 대구시

팔공산 자락 평광동, 가장 오래된 홍옥

팔공산 남쪽 자락 동구 평광동은 '대구의 강원도'로 불릴 만큼 깊숙합니다. 개발이 닿기 어려운 골짜기였던 덕에 과수원이 남았습니다. 1917년부터 사과를 심어 100년을 넘겼고, 지금은 140여 호가 120㏊에서 연간 1,650t쯤 거둡니다. 군위를 빼고 세면 대구 전체 사과밭의 6할가량입니다.

 

1935년에 심은 홍옥나무도 이곳에 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으로 2009년 보호수가 됐습니다. 상품성에 밀려 1980년대에 자취를 감춘 국광 품종을 되살리는 작업도 진행 중입니다. 마을이 나선 사업은 아닙니다. 옛 대구시 공무원이던 최주원 씨가 농촌진흥청에서 국광 다섯 그루를 분양받아 2025년 식목일에 심었습니다. 2024년 문을 닫은 평광초등학교 부지에 사과 테마공원을 조성하자는 구상도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