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 있던 소프트웨어 회사가 대구로 본사를 옮겼다는 소식이 몇 해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베이리스와 비즈데이터가 투자협약을 맺었고, 이듬해 말에는 울산에 있던 인터엑스가, 2024년에는 보안기업 SGA그룹이 대구 수성구 대흥동 수성알파시티에 자리를 잡기로 했습니다. 지역 언론은 이를 수도권 기업의 역외 유입으로 정리했습니다.
협약서에 적힌 내용을 한 줄씩 뜯어보면 이전이라는 단어가 덮고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옮긴 것이 법인 등기인지, 연구소인지, 사람인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네 곳의 투자협약 내용을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네 건의 투자액을 합치면 1,261억 원이고, 신규 채용 계획 인원은 229명입니다.
| 기업 | 이전 전 소재 | 협약 내용 | 투자액 |
|---|---|---|---|
| 베이리스 |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 본사·연구시설 건립(부지 2,051㎡), 50명 신규 고용 | 240억 원(2022년 2월) |
| 비즈데이터 | 서울 서초구 양재동 | 본사·연구시설 건립(부지 1,097㎡), 서울연구소 20명 재배치·89명 채용 | 154억 원(2022년 2월) |
| 인터엑스 | 울산 | 본사·자율생산 데모공장·공동연구실 건립(부지 2,420㎡) | 447억 원(2023년 12월) |
| SGA그룹 | 수도권 | 5개 계열사 통합연구소 7층 건립(부지 2,099㎡), 90명 채용 | 420억 원(2024년 11월, 2028년까지) |
| 자료: 대구시 투자협약 발표 및 언론 보도 종합, 2022~2024년 | |||
인터엑스는 울산에서 왔습니다. 수도권 기업의 이전으로 함께 묶어 세기에는 출발지가 다릅니다. SGA그룹의 협약도 본사 이동보다는 계열사 다섯 곳의 연구 기능을 한 건물에 모으는 쪽에 가깝습니다.
김형준 베이리스 대표는 협약 당시 "우수한 자율주행 인프라와 전문인력이 있어 이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비즈데이터는 달성군 국가물산업클러스터의 수처리 실증 환경을 이전 사유로 들었고, 인터엑스는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과 스마트시티지원센터, 시가 앞서 추진하던 ABB 육성사업을 꼽았습니다. SGA그룹은 DGIST 글로벌캠퍼스와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대구정보보호지원센터가 가깝다는 점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네 곳이 든 근거는 한 지점에서 만납니다. 모두 공공이 깔아둔 시설이거나 공공이 발주하는 사업입니다. 대구시는 테크노폴리스와 대구국가산업단지, 대흥동 단지, 동성로를 잇는 158㎞ 구간에 자율주행 실도로 인프라를 이미 구축해 두었고, 2026년 10월부터는 25톤 자율주행 화물차가 국가산단과 이 단지 사이를 오가는 물류 실증도 시작됩니다.
시장 논리로 들어오는 투자는 아직 더딥니다. 지난해 대구시가 발표했던 SK그룹의 8,000억 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투자 협약은 최종 무산됐습니다.

비즈데이터는 2025년 3월 25일 본점 이전 등기를 마쳤습니다. 다만 서초구 양재동 사무소는 서울사무소로 그대로 남아 있고, 춘천과 경산에도 별도 거점이 있습니다. SGA그룹이 옮기기로 한 것은 본사 연구소이며, 그룹 사옥 자체의 이동은 협약에 담기지 않았습니다.
베이리스도 판교와의 관계를 끊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2025년 성남시 드론실증도시 구축사업 참여기업 자격으로 성남관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협약서의 본사 이전은 등기와 연구 기능과 사람을 나눠 배치하는 과정의 한 단계에 가깝습니다. 수도권 철수를 뜻하는 표현으로 읽으면 실제와 어긋납니다.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집계로 이 단지 지식기반산업시설용지는 107필지, 17만 8,631.7㎡입니다. 이 가운데 46필지(7만 6,469㎡)가 미분양 상태로 남아 있는데, 외국인투자기업과 역외기업 유치를 위해 확보해 둔 부지입니다. 면적 기준으로 43%에 가깝습니다. 개발계획상 외국인투자기업 몫은 전체 산업시설용지의 10%로 정해져 있습니다.
같은 단지에서 지역 기업들은 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지역 ICT 기업 대표는 300평이나 600평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100평에서 150평이면 충분한데 그마저 구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창업보육시설을 벗어난 스케일업 단계에서 독립 연구공간을 찾지 못해 역외 이전을 검토하는 사례도 나옵니다.
공간의 성격이 드러나는 대목도 있습니다. 지난해 지역 게임기업 엔젤게임즈 사옥이 자금난으로 경매에 넘어가 두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의 약 57%인 59억 10만 원에 낙찰됐고, 낙찰자는 경북 경산의 위생용품 전문기업이었습니다. 경자청은 디자인업 영위를 조건으로 입주를 승인했습니다. 수도권 기업이 이 단지로 온 이유의 하나는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계획이 먼저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입주기업 수는 2019년 44개사에서 2020년 63개사, 2021년 114개사, 2022년 139개사, 2023년 243개사, 2024년 270개사, 2025년 302개사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종사자는 354명에서 6,300여 명으로, 매출은 822억 원에서 1조 3,600억여 원으로 커졌습니다.
2022년과 2023년 사이의 도약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이 일대는 원래 수성의료지구로 불리며 의료시설용지로 묶여 있었고, 의료기업 유치가 부진한 사이 2022년 12월부터 지식기반산업시설용지로 용도가 바뀌었습니다. 입주 가능한 업종이 넓어진 시점과 기업 수가 100개 넘게 뛴 시점이 겹칩니다. 역외 유치 성과만으로 증가분을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음 단계의 자금은 이미 확정돼 있습니다. 2025년 8월 국무회의에서 지역거점 AX 혁신 기술개발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가 의결됐고, 정부와 대구시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510억 원을 투입합니다. AX 표준모델 연구개발에 1,380억 원, 응용 솔루션·제품 개발에 3,580억 원, AX 혁신 R&D센터 구축에 550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2026년 7월에는 국토교통부가 이 일대를 전국 최초 스마트도시 특화단지로 지정·고시했습니다.
목표치도 나와 있습니다. 2030년까지 입주기업 1,000개, 종사자 2만 명, 매출 9조 1,200억 원입니다. 인접지에 조성되는 제2 수성알파시티는 58만 4,000㎡ 규모로 2028년 분양, 2030년 완공을 잡고 있습니다.
남은 변수는 사람입니다. 대경ICT산업협회는 기업이 늘어도 인력 수급은 여전히 어렵다고 말합니다. 6월 취임한 추경호 대구시장은 AX 생태계 예산 5,510억 원 확보와 제조시설 입주제한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규제가 풀리고 예산이 집행되면 수성알파시티의 다음 5년은 지금과 다른 모양이 될 텐데, 늘어나는 자리를 채울 사람은 아직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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